아무래도 다시 잠이 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을 나섰지 뭐야. 바다. 바다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가고 싶다던 바다. 다음주 일요일에 같이 갈까? 물었더니 너는 이번에도 ‘봐서’라고 대답했었지.
라디오도, 음악도 없이 그 먼 거리를 달리는 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어. 부쩍 속도를 내보기도 하고, 그냥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달리기도 했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넜어. 햇빛이 쨍쨍하다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흐리기도 했어.
바다에 도착했는데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왔어. 혼자 와서 미안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모래 위에 그렇게 적었어. 바람에 부서지는 모래 위에 네 이름을 적었다가 지웠어.
어제 우리가 주고 받은 문자를 다시 뒤적였어. 아마 오늘 하루종일 10번도 넘게 봤을 거야. 숨겨뒀던 가시를 바짝 세운 내가 보였어. 정말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내가 괜한 말을 했던 것 같아서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어.
나는 네 마음을 돌려세울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장난으로 휙 도망가거나 숨고 그랬었잖아. 그 때마다 내가 쫓아가서 잡아줬잖아. 앞으로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잖아. 자꾸 그 순간들이 떠올랐어. 나는 지금도 그래. 숨이 끝까지 차도록 너에게 달려가 손을 꼭 잡아주고 싶어.
끝내 나는 나를 탓하고 말거야.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미안했던 일만 떠올랐어.
네가 처음 선물해 준 화분 ‘페페’를 내가 창밖에 뒀다가 페페가 꽁꽁 얼어버렸던 거 기억나지? 눈물 흘리던 네 모습이 떠올랐어. 그 때 많이 미안했어.
롯데월드몰에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다가 내가 농담으로 ‘그럼 안 만나기 해야지!’ 했더니 네가 갑자기 펑펑 눈물 흘렸던 일도 있었지. 내 마음도 무척 아팠어.
독립문 근처에서였을 거야. 옆에서 끼어든 택시 때문에 내가 화가 나서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쫓아갔었잖아. 옆에 있던 너를 겁에 질리게 해서, 부끄럽고 미안했어.
담배 끊었다가 다시 피우면서도 한참이나 그 사실을 너에게 말하지 않았었지. 그러다가 우리 뉴욕 여행 가는 날 아침에서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말했잖아. 그렇게 오래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너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했어.
미안했던 일들이 참 많았는데, 충분히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미안해.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너랑 나는 너무 닮아서, 서로에게 아쉬운 일이 있거나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 있어도 그걸 터놓고 표현하기보다는 혼자서 꾹꾹 눌러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내가 못나서라고, 그렇게 우리 말없이 자책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외로웠던 건 아니었을까.
아쉬운 일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 있으면 말했어야 하나봐. 그래서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더 많이 이해해보려고 애쓰고 노력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혼자서 끙끙대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우리 조금은 더 솔직했어야 하나봐. 우리가 서로에게 부모는 아니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100% 이해해줘야만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제쳐뒀어야 하나봐.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든다고 말했어야 했어. 잠깐 다툼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런 순간들이 필요했던 것 같아. 움츠러들지 말고, 가끔은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봐. 말없이 자책하던 그 시간들에, 어쩌면 너와 나는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게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데도 말야.
우리 참 바보 같았다. 그치.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