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April 2012

오해



문득 어쩌면 모든 것들이 오해, 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오렌지의 껍질을 반쯤 벗겨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말없이 오렌지를 입에 밀어넣었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그 모든 것들이 오해, 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아니, 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믿을 수 있는 건지. 오해, 했다고 짐짓 오해하는게 혹시 더 큰 폭력은 아닌지. 등등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우걱우걱 오렌지를 씹어 먹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도 생각을 해야하고, 말을 해야 하고, 또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처 정돈되지 못한 싱크대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숙제들, 또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상한 마음이 채 아물기도 전에, 그렇게 아침이면 눈을 뜨고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먹고 머리를 감고 어김없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혼잡한 길을 따라 각자의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밤 사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적어도 내 주위의 세계는 그럭저럭 평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누군가와의 점심 약속과 해야할 일이 있다는 그런 소소한 사실들에 안도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 못한 말들과 듣지 못한 말들, 그 모든 말들의 빈틈에 대해 생각했다. 그 비어있던 공간을, 허공을 부유하던 말들을, 서로 가닿지 못하던 마음들을 떠올렸다. 감히 오해, 라고 이름 붙이기 부끄러울 만큼, 너무나도 앙상했던 관계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즈음 나는 얇은 실 몇 가닥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양복 아랫단추를, 끝내 고쳐 달았었다. 그래. 그랬었지. 단추를 고쳐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 버릇을 고치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덜 무서운 일이었다. 빙빙 돌려가면서도 미처 꺼내지 못했던, 그런 무수한 단어들의 조합이 못내 아쉽고, 미안해졌다.

비가 내린다. 어제는 만우절, 이었고. 지난 주말에도 남쪽에는 비가 내렸었다. 구두가 온통 젖어 못쓰게 됐다. 전화기 한 대를 새로 마련했고, 몇 가지의 자잘한 물건들을 더 주문했다. 주소록을 뒤적이다가, 휴대폰 주소록에만 남아있는 이들에게 어딘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새 전화번호를 알리려던 계획은 일단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새 전화기에 익숙해질때 쯤이면, 아마 조금은 상황이 나아질지 모른다는, 그런 도무지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는 기대를 잠시 해보기도 했다.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머리카락은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내 표정없는 얼굴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며, 터벅터벅 화장실을 나섰다. 허무하고, 또야속했다. 밝게 웃으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들, 열정인지 열심인지 아니면 가식인지 모를, 혹은 그게 뭐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을, 그런 말들을 뜨겁게 내뱉는 사람들, 부지런히 제 손을 흔들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몸부림치던 그들. 그 모두에서 나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잠을 좀 자야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어쨌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조금 더 태연하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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