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9 March 2012

짬뽕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고, 출근이 조금 빨랐을 뿐이었다. 평상시, 라고 부를 만한 그런 날들에 비해 많이 걸었고, 적게 먹었다는 것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강로 어디 쯤에선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 그 차의 뒤 꽁무니에 크게 경적을 울려주지 못한 것도, 유난히 소리가 큰 내 차의 경적이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도, 순간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던 것도,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화가 났다. 대상과 방향을 잃은 나의 분노에, 나는 주먹을 내리치며 어쩔줄 몰라했다. 차라리 소리를 질렀으면 나았을까. 크게 소리를 질러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온 세상을 쿵쿵 울릴 듯, 노래를 크게 틀어놓았던 차 안에서도, 나는 소리 한 번 지를 생각을 하지못했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맵기로 소문난 짬뽕집으로 차를 돌렸다. 더럽게 맵네. 절반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계산대에 선 점원은 '속이 쓰리면 우유를 먹으라'는 등의 충고를 늘어놓았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누구를 위해 핸드폰은 울렸나. 아무때나 문자와 메일을 쏘아대는 누군가가 원망스러웠다. 누가 어디에서 무슨 말을 했다는,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 거라는, 그런 문자나 메일 따위가 지금 내 눈에 들어올리 없잖아, 하고 대꾸하고 싶어졌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를 하나 더 장만해야 겠다는 오랜 결심을 실행에 옮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전화기는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한참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목소리에 묻어났던 어떤 시간들이, 마음을 후벼팠다. 아팠다. 엄마에게 좀 더 전화를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은 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문자를 보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많이 걸었고, 많이 들었다. 그에 비해 생각은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의 지치지 않는 걸음걸이 말고도, 나를 부끄럽게 했던 건 많았다. 오늘 그와 함께 걸으며, 알게모르게 내 마음은 가시밭길을 걸었던 것 같다. 마침 그 곳이 온수역이었다는 점도, 그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어느 것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보였다. 우울하고 슬픈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잘 된 일이었을까. 짬뽕 국물과 함께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 갔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아마 더 많이 걷게될 것 같다. 내일은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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